미리내성지 사생대회,수필-최우석 예로니모님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담동 성당
청담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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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성지 사생대회,수필-최우석 예로니모님

2023.11.28

미리내 성지순례

                  최 우석(예로니모)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청숫골의 신앙 공동체 700 여명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미리내 성지에 모였다.
본당 설립 50주년을 축하하며, 김대건신부님과 성인들을 본받아 믿음의 정신을 다지고자 함이다.

성지 조성 초기에 방문하고 그 후로 다녀 온 기억이 없다.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전 날 밤부터 가방을 싸고 아침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어린 시절 소풍을 가듯 간식, 뜨거운 커피, 생수 등을 챙겼다. 아내도 요즈음 무릎이 불편하였지만 특별한 성지 순례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였다.

지하철 파업의 여파로 시간이 약간 일정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제 시간에 성당 앞에서 단체버스에 탔다.
전날 밤에 탑승 차의 진행 봉사자로 부탁을 받았다. 다른 봉사자 자매님과 함께 인원을 점검하고 간식을 나누었다.
예정된 930분에 거의 맞추어 출발하였다,

역시 여행에는 따뜻한 설기 떡과 약식, 다과 등의 먹거리가 즐거움을 돋구어준다.
봉지에 정성껏 담아 준 봉사자들께 모두가 감사하였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5단을 함께 바쳤다.

 

성지에 도착 후에 우르슬라 기념관 근처의 벤치에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아침 온도는 약간 쌀쌀하였지만 바람이 없어 나뭇가지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햇살 아래서는 등이 따뜻하였다.
성지는 잘 정돈 되어 있고 가을 단풍도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른 구역에 사는 대자를 만나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교우들과도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떠난 도보 성지순례 팀이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70여 명 중에 연세가 80이 다되는 분들도 도전하여 완주를 했다.
대단한 용기이며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나 보다. 은이공소를 출발하여 신,,애덕의 세 고개를 넘어 약 3~4시간 동안 걷는 거리다.

김대건신부님의 시신을 메고 이 길을 밤에만 넘어온 이민식(빈첸시오)형제 등의 노고와 믿음과 사랑을 묵상을 하는 은총의 시간이었으리라.

 

점심 식사 후에 성지 안을 둘러보았다.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하늘은 마냥 높고 푸르며, 흰 구름은 붓질을 한 듯이 한 폭의 그림 같다.

1896년에 설립된 미리내 성 요셉 성당에 들어가 주모경등 기도를 했다. 규모는 작지만 내부 장식에서 역사의 거룩한 흔적을 느낀다.
가을 하늘을 생각하며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면 곧 비가 오겠지하고 말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하고 말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4-56)는 말씀을 묵상하였다.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실천을 되새겨 본다.

성당에서 나오면서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데 주걱이 안보였다. ‘다음에 구두 주걱을 기증 해야겠네했더니, 옆의 자매님이 여기 벽에 걸려있네요하였다.
또 한 번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지 못 한 성급함을 반성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수채화 등을 그리기도 하였다. 말구 우물, 묵상의 집, 성인 묘소, 야외 잔디 운동장 등을 산책하였다.

103위 성인기념 대성전 뒤쪽의 십자가의 길에서 구역 별로 기도를 하였다. 청동 조각으로 웅장하게 마련된 14처였다.
서로 번갈아 기도하면서 다시 한 번 같은 구역신자들 끼리 하나가 되는 시간이 되었다.
 

김대건신부님기념성당에서 김대건신부님의 무덤과 하악골을 보면서 기도하였다. 신부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거룩함과 주님의 현존을 느꼈다.
김대건 신부님처럼 피 흘리며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못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봉사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살겠다고 결심한다.
참수된 신부님의 시신을 이곳까지 밤으로만 일주일에 걸쳐 모셔온 평신도들의 신앙심을 생각하며, 이 시대에 맞는 백색 순교를 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겠다.

103위 기념 대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였다. 본당 세분 신부님과 함께 전 신자가 성지에서 드리는 미사는 더욱 거룩하고 장엄하였다.
신부님 강론에서 강조하신 50주년 기념 성구인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피 4,13) 라는 말씀처럼
순교자들의 용기를 본 받아 주님의 향기를 전하는 삶을 다짐해본다
.

 

미사 후에 잔디 광장에서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들며 즐겁게 단체 사진을 찍고, 성지를 떠났다.
돌아오면서 차창 너머 바라본 저녁 하늘은 불타는 노을로 물들었고, 내 가슴도 성령으로 가득 차올랐다.
버스 안에서 마지막으로 주모경을 바치며 청담동 성당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다시 한 번 모든 봉사자들에게 감사하였다.

우리 모두 함께 순례한 은총의 날이었다고 기뻐하였다.

 

함께 걸어온 50, 함께 걸어 갈 100을 다짐하며, 청담 성당 공동체의 밝은 미래와 희망을 확신한다.